-내가 생각하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의 의미
2002년은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굉장한 이변이 있었던 해이다. 제 74회였던 당시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을 모두 흑인 배우(덴젤 워싱턴, 할리 베리)가 차지한 것이다. 이전까지 흑인이 주연상을 받은 것은 60년대에 남우주연상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사실 아카데미는 이처럼 보수적인 시상식이라고 불려왔었다. 유색인종에게 박했던 전통과 더불어, 가족주의와 감동적인 스펙터클, 전쟁영화, 드라마, 장애인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특히 후한 등, 나름의 확률이 높은 패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에서 일정기간 이상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영화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투표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아카데미상의 보수적인 성향은 아마도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미국 중년 이상의 백인들이 투표권을 가진 그 아카데미 회원의 주된 부류로서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전 세계적인 대중의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어릴 때 부터 평균 이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당연히도 깐느 영화제와 비교해서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 '로컬 영화제'라는 언급을 함으로써 미국 영화계와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그 정체성에 대해서 상기하게 되었겠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는 시상식 자체가 영화제라기 보다는 그저 한 편의 쇼 처럼 느껴졌었고, 점차 어느 작품이 상을 받든 크게 흥미가 간다거나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예를 들어 천하의 쿠엔틴 타란티노도 대략 25년 전에 초기작인 <펄프 픽션>으로 이미 깐느에서는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여러 번 황금종려상 후보작 선정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그의 명성으로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에 소개시키는 데 한 몫을 한 장본인(이는 봉감독님이 수상소감에서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로써는 논란이 큰 작품일 수 있던 <올드보이>가 깐느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던 당시의 심사위원장이기도 했다) 이기도 하지만, 정작 아카데미에서는 각본상 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다. 작품상 후보작으로도 <펄프픽션>때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일 뿐이다.
수천 명(내가 알기로는 6천~1만 명 사이)이 투표를 하는 영화제이고 투표권자들의 중복 차순위 투표들까지 고려되는 방식이다 보니, 아카데미 작품상은 참신함 보다는 투표자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표가 많이 가게 되어 있다. 이는 아카데미상의 성향을 규정하는 것일 수 있는데,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예 처럼, 완전히 새로운 참신한 영화가 수상을 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카데미도 작품상을 기준으로,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거에 비해 좀 더 인종, 젠더, 혐오, 사회적인 문제 등에 관심을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된 것 같다.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에 진출하는 구성원들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관심사들이 변해온 것 처럼, 아카데미의 투표권을 가진 구성원들 역시 중년이상의 백인 중심이었던 예전에 비해 다양성 면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세대도 교체 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사들 또한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고 되고 있는 것이 작품상의 후보작들과 수상작의 성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작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블랙 팬서>가 들어간 것은 흑인 구성원들의 몰표 영향력이 커졌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또한 아카데미상의 장점이자 단점이 드러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기생충>이 역대 최고의 한국영화이라거나 봉준호 감독님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역사적인 해라고 생각하는 2003년의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부터 시작되어,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명성들과 함께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의 대중문화의 글로벌화를 바탕으로 한국문화라는 브랜드가 두드리고 두드려서 갈라진 틈을 <기생충>이 내려꽂아 아카데미 회원들의 보편적 정서마저 열어제낀 것이라 여기고 있다. 즉, 서구 문화에도 쿠엔틴 타란티노같은 적극적인 선진가들이 알아보고 인정한 후 이후 입소문으로 돌던 것들이 이후로도 꾸준히 그 기세를 이어가 이제는 보편적으로도 익숙해질 만큼(보편적 정서에 부합하는 참신함이랄까.)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한국영화에 대한 명성의 총 합의 결과물이자 쾌거라고 여겨진다.
배경을 제외하고 단순 비교하자면 나는 당연히 아카데미보다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이 훨씬 더 큰 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배경까지 고려한다면 마치 MLB가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을 쓰는 것 처럼, 90년이 넘도록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과 규모가 큰 시장을 기반으로 인지도 역시 가장 크지만 철저히 미국 중심의 철옹성 같던 아카데미가 변화의 의지(또는 현상)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고, 그것이 바로 한국영화가 이루어낸 것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뿌듯함이자 통쾌함이 아닐 수 없다.
봉준호 감독님이 언급하고 주목받은 "로컬 영화제"와 "1인치 자막의 장벽"이라는 키워드는 영미권의 문화적 오만함을 각성하게 만든 결정타였다고 생각한다.
100년을 넘긴 한국 영화의 역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나는 한 편으로는 아카데미상의 입장에서도 어마어마한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주목하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최초로 외국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과 주요 상을 휩쓸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는 본질적으로 매우 큰 전환점을 맞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저 로컬 영화제였던 아카데미상이 앞으로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 지가 더 궁금해진다.
2020년 이후, 한국영화와 오스카는 각각 어떤 모습이 되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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