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딥포커스의 관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020)> - 이야기 지푸라기들은 구성의 재미를 잡을 수 있을까.

DeepFocus 2020. 2. 2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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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적인 중요한 얘기를 하자면 스포일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먼저 간략한 총평부터 하고서 중요한 이야기는 빼내어 뒤로 미뤄서 언급하겠습니다.)

제목처럼 여러 캐릭터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절박한 상황에 놓여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해 나가는데, 캐릭터들의 절박함을 관객의 감정과 동기화시키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시놉시스 기획 단계 수준에서의 기시감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자체는 흥미롭고 구성의 아이디어도 나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나름의 재미도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중후반까지의 상황 나열이 너무 느리고 진부한 느낌이 들게 함으로써, 개성을 얹으면 훌륭할 수도 있었을 소재를 충분히 더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SPOILER WARNING!-
(이하는 영화를 본 사람만 읽기를 권장합니다)

전체의 스토리는 크게 각각의 캐릭터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사건의 시간순으로 재구성해보자면 다른 두 개의 이야기 줄기가 하나로 합쳐지고 거기에 세 번째 이야기가 덧붙여져서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영화상으로는 이 세 이야기들 모두가 중후반까지 거의 병렬적으로 진행되다가 거의 끝에 가서야 각자의 이야기가 하나씩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이야기와 구성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고 아이디어도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데, 중후반 이후에 그 구성의 퍼즐 조각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기까지 지루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점점 더 궁금증을 유발하고 흥미로워야 할 각자의 이야기가 매력이 있다거나 딱히 밀도가 높지 못하고 진부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괜찮은 스토리와 구성은 있지만 그것을 채우는 이야기에 개성과 흡인력이 부족하다 느꼈다.

예를 들면, 미란의 이야기에서 진태는 고의 교통사고를 내는데, 그 일을 벌이고 나서 진태는 갑자기 넋이 나간 듯 행동하면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데 관객은 사고 현장에서도 암매장할 때도 진태가 갑자기 느끼기 시작하는 후유증에 공감할 만한 시체조차 보질 못했다. 관객은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느끼고는 있지만 그것에 교감할 기회는 전혀 얻질 못했다. 미란 역시도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남편을 살해 모의까지 하게 되고, 진태도 충동적으로 살해하는데, 그런 행동을 할 절박함을 느낄 정도의 감정은 관객은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청불 등급임에도 설명하는 대사나 암시만으로 캐릭터들이 절박하다는 상황을 설정하며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해결해버린 것이다.

순자(윤여정)의 캐릭터도 예를 들 수 있다. 며느리와의 큰 갈등을 유발하는 치매노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막상 그 갈등을 관객은 본 적도 없고 이 캐릭터가 영화에서 영향을 끼칠 만한 별다른 것을 보여주질 않는다. 캐릭터는 존재감이 큰데도 낭비로 그치고 마는 것이다. 며느리 영선(진경)도 예를 들 수 있다. 이 치매 시어머니 때문에 병원 신세까지 지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을 하는 절박한 인물이다. 그 고생을 설정상으로 알게 되지만, 그 고통을 겪는 상황을 보지 못해 관객이 그 인물에 공감을 하기에는 굉장히 적극적인 상상이 요구된다. 많은 설정들이 줄거리만으로도 대체가 가능하다고 할까.
그나마 이 영화에서 무미건조하지 않고 재미가 느껴지는 부분은 시나리오에 고착되지 않아 보이고 배우들이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더 자유로운 조연들인 박사장(정만식)과 붕어(박지환), 형사(윤제문)가 등장하는 장면들이었다.

구성상으로는 큰 그림이 비슷한 설정일 수 있는 <펄프 픽션> 같은 것과 비교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작품도 역시 구성 자체도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흥미로웠지만, 각각의 이야기를 전개함에 있어 모든 이야기의 대사 하나하나가 개성적이고 많은 것들을 풍자하며 캐릭터들의 매력들이 넘쳐나는 작품이었다. 물론 비교 대상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일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이미 25년 전에 나온 이런 영화도 보았는데, 이 영화는 구성의 매력에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이는 충분히 많은 것을 설명을 할 수 있었을 원작 소설의 매력이 될 수는 있겠으나,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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